연재 5 / 서울시 상수도본부 30년을 돌아본다- 상수도는 기피부서로 낙인
상수도는 기피부서로 낙인 정체기로 (2011-2019: 박원순)
최동윤, 정연찬, 남원준, 한국영. 이창학, 백호
김경호, 윤준병 본부장은 박시장에게 신망
관선 서울시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비교적 짧았지만 시장마다 자신의 취향과 선호도, 당시의 사회 환경에 따라 단기적 사업을 추진한 것이 보편적 경향이다. 박원순 시장이 전 시장들과 다른 행보의 시정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면 조직 관리에서는 서울시가 주도하는 행정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행정으로 달라졌고, 주요 추진 정책은 교통, 환경, 도시재생 등 양적 성장에서 질적 관리로 변했다. 과거에는 통합적 형태의 복지였다면 현재는 구체적이고 소소한 측면에서 시민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시장의 비전도 과거에는 중앙 정부의 영향을 받았지만 박원순 시장은 시민과 소통하려는 형태로 차별성이 뚜렷하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도 상수도본부 인사에서는 그 어떤 시장보다도 전문성을 외면했으며 시장의 정치적 야망에 편승한 서울시 전체 인사에 희생양으로 삼아버린 경향이 높다. 상수도본부는 1,972명이란 최대 단일조직을 이끌고 있으며 4급 이상 고위공직자만도 물연구원을 포함하여 25명이 있는 대집단이다.
그러나 상수도본부의 설립취지와 어긋난 비전문 인사행정으로 상수도본부는 서울시에서는 음지의 동토로 굳어져갔다.
박원순 시장이 재임하던 2011년 최동윤 본부장부터 전임 백호 본부장까지 8명이 수장을 맡았는데 평균임기가 1년 3개월이었다.
박시장이 각별히 챙겼던 인물로는 김경호 23대 본부장과 윤준병 26대 본부장으로 김경호 본부장은 시의회 사무처장과 서울농수산식품공사장에 안착했다. 윤준병 본부장은 서울시 부시장을 역임하고 퇴임 후 고향인 정읍, 고창에서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현재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두 인사는 상수도에서는 김경호(4개월), 윤준병(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스치듯 지나가고 말았다. 이 같은 인사패턴을 보더라도 힘의 논리와 신망 받는 인사는 차기 서울시 전체 인사 시 요직으로 이동하기 위한 정거장 역할을 상수도본부가 충실히 대행했다는 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고 박원순 시장은 토건사업에 알레르기 반응으로 시장 취임 후 지속적으로 추진하던 고도정수처리사업을 중단시키는 패착을 두었으나 녹조 등 조류사고로 고도정수처리사업은 다시 가동되었는데, 당시 시민단체(NGO)등에서도 고도정수사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동윤(21대:2011.2-2012.12)본부장은 상수도의 기본방향을 인력의 전문화와 인력조직의 개선을 통한 대외신뢰도를 높이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전문성이 중요하지만 인력 중에는 일하는 인물만 주로 일하게 되고, 대다수 인력들은 방관하고 나태해져있다는 판단아래 전체 인력 중 30%는 새로운 인물로 교체하여 신선한 충격과 율동적 사고로 전환하자는 취지의 조직과 인사개편이 단행됐다. 하지만 균형성과 형평성이 사라진 서울시 인사구조에서는 수도전문가만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외부인사는 신선함과 창의성보다는 퇴임이 임박한 자나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인사들의 유입으로 의도한 인사개혁은 사실상 효과를 보지 못했다.
2011년에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의 국가가 투자한 실증 막여과 시설이 영등포정수장에 설치되어 운영됐으나 운영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막여과 공정의 기술혁신과 국산화에 기여했던 영등포 막여과 공정은 사실상 10년 후 폐기처분해야하는 기술행정의 불합리한 모순이 다시금 표출되는 현장을 만들었다.
국내 병물 수돗물로는 최초로 미국위생재단이 부여하는 NSF인증을 받았지만 환경부의 플라스틱(페트병)사용 최소화정책에 최근에는 생산량을 줄이고 과거의 물맛으로서의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는 홍보 전략에서는 적정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연찬(22대:2013.1-2013.8)본부장은 의욕을 가지고 상수도를 운영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인물 중 하나이다. 수도행정의 미진한 분야를 간파하고 분임교육 등을 통해 사회적 환경에 앞서 적응하는 상수도 조직체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2013년 7월 15일 암사정수센터에서 노량진배수지로 공급하는 상수도관 이중화공사 중 홍수로 인해 한강물이 터널로 유입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등 작업인부 7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사고가 발생하면서 그 책임을 지고 본부장을 사임하게 된다.
우천으로 인해 수몰이 예상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작업을 강행한 하도급 현장소장에게는 징역 2년, 시공사 현장 소장에게는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 책임감리에게는 금고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하지만 상수도본부는 청렴을 위해 모든 상수도 시설공사에서 감리와 감독권을 가질 수 없게 한 시 조례에 의해 담당 과장 등 책임자들은 무죄가 선고되었다.
상수도 시설을 발주하는 발주처가 감리와 감독권을 가질 수 없게 한 것은 단순히 비리척결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한 것으로 발주처의 사업방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작업공정의 또 다른 허점을 노출시켰다.
김경호(23대:2013.8-2013.12)본부장은 4개월 남짓 본부장직을 역임했으나 업무파악만 하다가 서울시의회 사무처장으로 승진되어 떠났으며 현재는 서울농수산식품공사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원준(24대:2014.1-2015,7)본부장은 CEO로서의 책임감과 통솔력보다는 책임질 일에는 적극 나서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수도요금인상에 대해 박원순 시장에게 건의했지만 시장선거후에나 인상하라는 민선시장들의 일반적 경향처럼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상수도 운영에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며 상수도를 떠나 복지본부장으로 자리 이동했지만 사회에 와서는 상수도와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한국영(25대:2014.7-2017.7)본부장은 상수도에서 공직을 마감한 인물로 서울시에서는 유신공무원으로서 마지막 남았던 인사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며 상수도 직원들에게 탁구, 족구 등 다양한 체육행사를 펼쳤다.(문승국 기술부시장은 육사출신, 한국영 본부장은 해사출신으로 상수도본부에서는 4급으로 퇴임한 인사들 중 조성현, 유재룡 부장 등이 육사출신이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골목대장이라는 별칭을 받기도 했다. 기술 분야에서는 부본부장의 전결을 통해 추진하던 기존 방식을 개선하여 부본부장 결재권을 본부장이 모든 결재를 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이후에는 부본부장의 전결권이 사라졌다.
윤준병(26대:2017.7-2017.10)본부장은 현재 21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직 국회의원이다. 상수도전문가들에게는 상수도본부장으로 오랫동안 재직했다면 상수도에 많은 발전을 기대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윤 본부장은 상수도와 깊고도 가슴 아린 사연이 숨겨져 있다. 2002년부터 3년간 상수도본부 경영부장으로 재임한 경력이 있다. 그것은 승진이나 희망이 있는 보직이 아니라 평소 윤 본부장이 소신 있게 활동했던 조직(교통 분야)과는 전혀 별개인 생뚱맞은 상수도에 좌천성 보직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당시 원세훈 본부장은 부시장으로 영전한 것과 달리 이명박 시장에 의해 유배지인 상수도 경영부장으로 근무, 역대부장급에서는 임성수, 고완기 부장과 더불어 가장 오랫동안 재직한 인물(2년5개월)이다.
그리고 12년 만에 다시 1급 상수도본부장으로 돌아왔다. 2008년 진익철 본부장(2급) 이후 2급이 맡았던 상수도본부장에 1급이 본부장으로 왔다는 계급적 갈등을 갖기도 했다. 도시교통본부장 시절 지하철 9호선 구조조정 등 큰 성과를 연출한 인물이면서도 믿었던 박원순 시장에게 팽 당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동토인 상수도본부장에 졸지 임명을 받자 한동안 장기휴가를 내고 보름정도 출근을 하지 않기도 했다. 상수도본부장으로 발령받은 인사가 휴가를 내고 자리를 비운 사태는 윤 본부장이 처음이다. 결국 3개월 남짓 본부장을 역임한 이후 기회조정실장과 부시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했다.
윤 본부장은 이명박과 원세훈의 관계처럼 박원순과 윤준병으로 통하는 인물로 21대 국회선거에 출마 시 고창, 정읍에 박원순 시장이 찾아와 유세를 돕기도 했다. 행정직이면서도 기술 인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원격검침 등 계량기에 대한 근본적 기본구상 없이는 원격검침도입은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과거 12년 전 원격검침문제를 경영부장시절 거론한 장본인이 윤 본부장으로 계량기의 현실적 문제를 누구보다 잘 간파한 인물이다. 경영부장시절 상수도정보화전략에 역점을 기울였으며 고객관리시스템의 체계화에 노력했다. 비효율적인 요금부과 징수와 체납업무의 개선을 위한 작업을 시도했는데 체납업무는 외부 민간위탁으로 사업방향을 전환하자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윤 본부장이 본부장 임명 시 깊은 좌절과 고뇌를 하게 한 상수도본부는 서울시 조직에서 가장 버려진 조직임을 또 한 번 증명하게 했다.
이창학(27대:18.1-2019.7)본부장은 문래동 수질사고가 터지면서 해결점을 찾지 못하다가 상수도본부를 떠나 시의회 사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업방향에 대한 결정을 유보하거나 결단을 내리지 못해 많은 사업들이 지지부진하거나 해를 넘기며 상수도조직의 피로도를 높였다. 관로수명주기가 30년이란 비과학적 논리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본부장이 떠난 후 백호 본부장이 취임하면서 빠른 결론을 통해 사업은 가속도가 붙었던 현상과 매우 대조적인 업무행태를 보여줬다.
백호(28대:2019.9-21.4)본부장은 빠른 결단으로 전임본부장시절 산적하게 쌓여만 있던 각종 사업들을 활발하게 진행시키며 물꼬를 열어줬다. 그러나 원격검침, 수도계량기, 관로공사와 관로자재의 선별 등 기술 중심 분야에 대해서는 후일 새로운 평가가 예상된다. 상수도본부 30년 동안 처음으로 본부장, 부본부장, 물연구원장 모두 2급 인사로 자리매김했지만 업무추진과 조직 관리에 대해서는 진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4급 이상 고위직중 상수도전문가로 남아있던 이규상 급수부장을 도로사업소장으로 보냈으며 4급으로 승진한 행정직 박진용 과장이 주차시설과장으로 상수도를 떠난 후 상수도 본부에는 4급 이상 수도전문가가 서대훈 생산관리부장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수도사업본부 발족 30년사를 출간했다.
(수도전문가:구아미 부본부장(3년 경력), 서대훈 생산부장)
(환경경영신문/환경국제전략연구소 전략연구팀/김동환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