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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에세이-(Life essay)-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친구

길샘 2018. 8. 25. 00:13

라이프 에세이-(Life essay)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친구

   


 

젊은 날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를 읽었다. ‘안나 카레니나를 탐독하며 애처러움을, 신과 인간의 사랑을 승화시킨 참회록에서는 종교적 관념을, 귀족문학에서 서민문학으로 전환시킨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바보 이반 이야기들을 읽으며 진정한 삶은 무엇인지를 고뇌하게 했던 레프 톨스토이.

그 톨스토이가 던진 질문에 나는 지금 이 순간 다시금 온몸으로 절절하게 반추하게 된다.

 

-당신이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며칠 전 관계설정이 희박한 자양동 좁은 도로를 달려갔던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자양동 뒷길은 평생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게 지나던 길인데 그 순간을 목격하면서 톨스토이가 던진 물음에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반성과 자기성찰은 종교적 침잠속에서도 일궈지지만 이렇게 뜻밖의 현장에서도 무지개로 피어 오른다.

36-7도를 넘기는 이상기후의 무더위속에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데 갑자기 차량이 밀집되기 시작하면서 시속 10킬로 정도로 서행을 하게 되었다.

오십여 미터 정도 지나자 2차선 차량들이 서서히 1차선으로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 한낮에 왠 공사를 하나, 투덜 되면서 차선을 바꾸기 시작했다.

자주 가는 편인 일본에서는 대낮에 공사하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모든 도로공사는 밤 10시 이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공사현장을 목격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도 도로공사만큼은 야간에 실행해야 에너지 낭비, 대기오염등을 저감시킬 수 있을 텐데 한낮에 차선을 막고 공사를 하고 있어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멀리서 공사장 안내판이 보이고 누군가 손짓으로 차량통행을 안내하는 모습이 보였다.

넓은 창이 있는 국방무늬의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를 쓴 사람이 손짓으로 차량을 안내하고 있는데 너무도 정열적이고 의사전달이 확실한 강력한 몸짓이었다.

참 열심히도 온몸을 던져가며 이 땡볕에 안내하는구나 생각하며 무심히 스치듯 1차선을 빠져 나갔다.

공사 안내원의 그 혼심을 담은 몸짓에서 참 건강한 삶이다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다.

이미 차는 공사현장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고 열정적인 손놀림으로 차량을 안내하는 그 주인공이 나의 소중한 50년 지기 친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소중한 친우중에는 장애를 지닌 친구가 있다.

한 친구는 소아마비로 살고 있지만 공원을 자기집 안마당처럼 자연과 함께 노닐며 가난을 한점 부끄럼 없이 동네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사는 친구와 바로 지금 도로위에서 스쳐 간 친구이다.

그는 당시 우리시대에서는 가장 부유하면서 권력의 최상위층에서 살던 친우였다.

친구집을 방문했을 때 서재를 메운 각종 서적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하지만 이 친구는 선천성뇌성마비로 몸의 균형이 흩어졌고 말도 어눌하게 표현해야 했다.

비록 말은 어눌하지만 힘과 확신에 찬 당당한 표현을 했다. 단단한 바위를 조각하듯 힘주어 말했으며 그 말 한마디는 신중했고 뱉은 말에 대해서는 온 몸으로 표현했다. 그야말로 정직과 신뢰가 절절하게 넘쳐나는 친우이다.

그렇게 중학시절부터 사귄 우리는 환갑을 넘기고는 친우들 애경사에서나 종종 만나는 사이가 됐지만 그 맑은 영혼은 언제나 그 시절 그대로였다.

 

침묵속에서 던지는 눈빛이며 해맑게 하늘위에 또 다른 흰구름을 펼치듯 웃는 모습이며, 동심 그대로 살아 있는 모습에서 몇 마디 말을 섞는 것보다 자연스러웠고 그 표현의 의미를 몸짓으로도 교감하는 우리사이다.

어느듯 자식(결혼했었으나 이혼함)은 성인이 되어 자기만의 세계를 그려가고 있는 가운데 자신도 홀로 뒤척이지 않고 공공근로자로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업무를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던지는 모습. 그것은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어느 인생의 이야기보다 깊숙이 각인되고 나를 되돌아 보게 하는 시간을 각별하게 던져 주었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다.’라고

지금 이 순간 그 친구는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신명나게 온몸을 던져가며 하고 있다. 넘쳐 흐르는 땀망울이 무척이나 달디단 보약일 듯 싶다.

 

어느새 우리도 60을 넘겼구려, 친구 서상원.

그대는 멋지게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요리하고 있다.

누구보다 철저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무한도전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혼불을 짚이고 있다. 친우여 너야말로 멋지고 값진 삶이다.

육순을 넘기면서까지 남 모르게 또 다른 사람에게 깨달음과 삶의 묘미를,오늘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것을 몸짓으로 알려줬다.

또 한번 신세를 지는구나. 그 빚을 언제 갚아갈 수 있을지.......

이천 십팔년 팔월 무더위속에 갇혀버린 작금.

자양동 도로위에서 탈춤을 추듯 신명나게 굿판을 펼친 친우에게 다시금 감사를 표한다.

 

톨스토이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작은 변화가 일어 날 때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라고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오로지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 톨스토이도 귀족집안에서 자랐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친우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

추신:이 글을 읽고 감사의 말과 함께 셀카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2018815일 길샘 김동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