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샘 김동환의 인생칼럼-청첩請牒-김우영과 나혜석
길샘 김동환의 인생칼럼-청첩請牒
청첩((請牒)
현대사회에서는 단순히 혼사일에 초대하는것만을 청첩이라고 하지만 경사스러운 행사에 초청하는 것도 청첩(請牒)이라고 일컸는다.
IT산업이 급속화되면서 요즘에는 모바일을 통한 청첩이 대세로 굳혀져 인쇄물을 통한 청첩장보다는 모바일청첩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봄,가을에 집중되던 혼사날도 이상기후인지 혼례식장의 한계여서인지 엄동설한에도 아침을 깨우는 까치처럼 청첩은 날아든다.
일제통치를 받던 시기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청첩장은 언제였을까.
1920년 4월 10일 <동아일보>에 실린 공개 청첩장이다.
변호사 김우영과 여류화가 나혜석(1896년생)이 결혼한다는 대외적으로 광고한 공개 청첩장은 세간의 화재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신랑인 김우영(1886년생)은 34세의 변호사로 딸까지 둔 기혼 남성인 반면, 신부인 나혜석은 당시 갓 24세의 미혼 여성으로 우리 나라 최초의 여류화가였다.
젊은 처녀 화가와 기혼의 변호사 결혼 소식에 '천벌을 받아 죽을 놈', '미친년이 따로 있었구나'등의 비난을 뒤로 하고 나혜석은 세 가지 조건을 내걸고 결혼을 감행했다.
일생을 두고 자신을 사랑할 것, 그림 그리는 일을 방해하지 말 것,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 별거해 둘만이 살 것 등이었다.
나혜석은 이 조건들을 쾌히 받아들인 김우영과 4남매를 두고 살았으나 결혼 11년째 파리 여행에서 최린과의 염문으로 결국 이혼 당하고 말게 된다. (이혼후 삼천리에 연재한 ‘이혼고백서’는 유명하다.)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취미'라 말하고, 도리어 최린에게 위자료까지 청구한 나혜석은 결국 행려병자가 되어 무연고자로 53세에 쓸쓸히 죽었다.
최린(1878년생)은 메이지대 법과를 졸업하고 보성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신민회에서 항일구국운동등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기도 했지만 결국 친일파로 변절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와 기관지 매일신보사장등을 역임한 친일파이다.
나혜석과는 출소 후 구미 30여개국을 유람하던 시기에 만나면서 연문설을 퍼지게 했다.
날아 든 청첩장중에는 이름도 희미하고 신랑측에서 보냈는지 신부측에서 보냈는지 분간키 어려운 청첩도 있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부터 절친함의 비중과 살아온 과정에 대한 이정표를 확인하는 일도 청첩이 던져준 고민거리이다.
멀고 가까운 사이에 대한 줄눈을 대보기도 하고, 신세를 졌나 안 졌나, 영업성이 있나 없나, 죽은 권력인가 산 권력인가도 주마등처럼 가늠하게 된다.
일단 초대에 응하기로 굳히면 장소의 멀고 가까운 측량을 해야하고, 비싼 호텔인가 서민적 예식장인가에 따라 액수도 변동되야 한다.
상대를 배례해야 하므로 음식값에 상응하여 돈봉투로 대신하기도 한다.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가장 고민스러운 일상중 하나가 청첩장이라고 고백함도 이런 이유에서이리라.
농경사회에서 우리의 전통혼례는 점차 사라지고 시골에서조차 온동네의 잔치였던 풍경은 찾기 어렵다.
젊은 날 보았던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신부와 대청도 신랑의 결혼식 풍경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결혼식 전날 신랑이 백령도 신부댁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며 잔치를 펼치고 나면 신랑,신부가 신랑댁이 있는 대청도로 배타고 와서는 동네 면사무소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는데 그 형식이 전통혼례와 가깝다.
신혼여행은 면장차를 빌려 타고 섬을 한바퀴 돌고 나면 결혼식이 끝나는 매우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부산등 경상도지역에서는 하객들에게 답례품과 더불어 여비가 담긴 봉투를 나눠주는 풍습이 있듯 지역별로 나라별로 결혼풍속도는 다양하다.
일본에서는 청첩장을 보내면 반드시 참석여부를 확인하고 테이블마다 이름을 명시하게 한다.
좌석배치는 가까운 지인들이 함께 어울려 담소를 나누게 하는 배례를 한다.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모 인사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보냈고 그들에게서 일체의 축의금을 받지 않은 인물도 있다.
부유하면서 권력가의 혼례식에 참석한적도 많지만 이처럼 축의금을 거절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 유독 기억에 남는 결혼식이었다.
고위직으로 있다가 퇴임한 존경받는 한 인사는 청첩장을 보내는데 있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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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생각해 볼 만한 청첩의 원칙론이다.
덧붙인다면 가깝고 먼 사이라는 것이 종이 한장 차이지만 최근 만나 안면이 그리 두텁치 않은 사람에게는 보내지 말자는 원칙을 나 자신 덧붙여 본다.
품앗이 성격인 결혼식 청첩장.
그나마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청춘들이 많아 국가적 고민인 요즘 세태에서 청첩장의 범란도 시대상황에서는 축하해줄 일이긴 하다.(2012년8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