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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넘지 못하는 한국의 젊음-사라진 미래

길샘 2017. 10. 7. 23:10

한계를 넘지 못하는 한국의 젊음

-우리의 미래는 설계되고 있는가-

 

정부와 국회는 한해의 결산인 국정감사준비로 변변한 휴가를 보내지 못했다.

평민들에게는 10여 일간의 한가위는 멀리 떨어진 가족들간에 이런저런 소통의 장이 되어 주었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변변한 일자리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침묵은 또 다른 삶의 절벽이다.

농촌과 어촌마저 일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동남아시아 계통의 다문화식구들이다.

마을 여기저기서 성실한 이국인들은 땅을 매입하고 자신들의 고국과 무역을 하면서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

시집, 장가는 언감생심이다. 숨고르기도 가쁜 연인뿐이다. 그저 불타는 갈증은 부모들 마음뿐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 가구가 27.9%540만명이라고 한다.

지난 2010년보다 7년만에 118만 가구의 증가이다. 연령별로는 30대가 95만명이며 2093만명,4084만명순이다.

이 동네 저 동네 까르르 웃는 아이들 소리도 사라졌다.

대한민국은 그저 토끼만한 영토뿐이고 주객이 교체되는 분기점이 얼마 남지 않는 듯 하다.

교육,사회,가정,경제,산업,정책,보건,노동등 모든 분야에서 변화는 급물살을 타야 하는데 국가전략은 뚜렷한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환기의조선이라는 조선말기 한국을 방문한 어느 선교사의 글을 다시 음미해보자.

-조선인들의 특징은 매사에 정확성이 없고 대충대충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모레는 그저 어제와 같은 날일 뿐이다, 약속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신뢰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일에서 정확성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다.

조선에서는 명확한 설명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고 정확한 정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조리 있고 정확한 정보란 조선인의 정신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1백년도 훨씬 전인 그 시대의 조선민족의 면면이 오늘날과 하등 변한 것이 없다. 어쩜 놀랄 정도의 정확하고 진솔한 하마평이다.

 

다블뤼 주교의 기록물에는 더 끔찍한 실상이 실려 있다.

-조선의 양반들은 평민에게 너무 가혹한 폭정을 일삼는다. 경제적으로 부족하면 평민에게서 착취, 약탈, 불법구금을 수시로 하는데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관리나 수령등 양반들은 논이나 집을 사고도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것을 관습이라고 한다.

조선에서 가장 못된 착취계층은 바로 양반들이다. 조선의 왕이 백성들을 잘 통치하려 해도 양반 계급이 중간에서 권력을 남용하여 횡령과 착취를 일삼는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예언이라도 하듯 정확한 진단이며 평가다.

 

서양인들이 바라본 당시의 생각은 이렇게도 투영되고 있다.

-조선의 국왕은 인간적인 마음씨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선량한 사람이다. 국왕은 가진 것이 없고 백성들은 굶어 죽는데 양반 대신들은 넘칠만큼 풍족하게 산다, 권력과 부, 자유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은 왕이 아니라 바로 이런 양반 계급이다.-

당시 일본과 한국을 비교한 글에서는 일본인은 하루에 천원을 벌면 백원어치를 먹는데, 조선사람은 백원를 벌면 천원어치를 먹는다.’라고 생활상을 비교하기도 했다.

조선이 일본에 통치를 받기도 전인 1890년대 대한민국 곳곳의 백성들은 만주와 중국등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1891년에는 평안도에서 10여만명이나 집단으로 조국을 탈출했다.

모두가 흉년과 나라살림의 황폐로 먹고 살기위해 간도지방등으로 떠났다.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절망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떠난 것이다.

일본과 미국등 선진문물을 현장에서 확인한 양반대신들은 서양문화를 연구하기는커녕 개화파와 수구파들의 논쟁으로 일삼았다.

 

1885년 아펜젤러가 미국 선교본부로 보낸 연례 보고서의 기록을 다시금 읽어보자.

-조선의 양반들은 아주 비열한 관습을 가지고 있다. 결혼 후 한 3일간은 부인과 지내지만 그 후에는 첩들하고만 산다, 그러면서 본부인에게는 정절을 강요한다. 양반집 여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녀들이 홀로 집밖으로 외출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당시 조선 여인들의 생활상을 그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곳곳에 이런 잔존물들은 심한 부패로 악취를 풍기고 있지만 장판과 시멘트로 덮어 버리고 그 위에 마주 앉아 기후변화만 탓하고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80년대의 참극을 보여주고 국민의 장년층은 모두 알고 있으나 젊은층은 알바 아니며 대한민국의 정치가들은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악착같이 땀과 정열로 키워 온 기업인들은 자식들에게 교육은 시켰으나 정신은 가르치지 못하고 그 결과 부친의 기업조차 운영하기를 꺼린다.

해방이 되어서도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실인 영친왕과 덕혜옹주에 대해 조국은 배척했고 오히려 친일파들만 다시 정권의 최상위를 차지했다.

바르게 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침은 십계명처럼 조잘거리나 아이들이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는 전혀 달랐다.

이 사회의 희망인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회 곳곳에서 활약한다,

하지만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본 이들은 정직하고 올바른 사고로 세상을 판단하기 보다는 기회주의와 적당주의적 행위로 공동체적 사고는 애초에 없는 일상이다.

 

대한민국의 대수술, 대변혁을 서두르는것도 다 이런 이유이다.

-나는 죄인이로서이다- 50대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은 죄수번호를 달고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한가위가 씁쓸함도 허튼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10월이다.

(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김동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