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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호 전환경부차관의 자전적 –공직심서-연재 11

길샘 2017. 3. 3. 00:30

문정호 전환경부차관의 자전적 공직심서-연재 11

 

3.2. 현장에서 확인하라

 

현장은 공무원이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는 자리다. 시행착오를 거쳐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식과 감각을 체득하고, 미묘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실제로 해보아야 확실히 알 수 있다. 책과 대중매체를 통해 학습하고, 남에게 배워서 알게 되거나, 생생하게 체험해서 성과를 올리거나, 실패해서 자신의 감각으로 확인해야만 전문적 능력이 된다. - 사사키 나오히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확보하고, 업무 추진을 위한 조직과 인력을 확보했다면 정책이나 사업이 제대로 집행될 것으로 자신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많은 경우 정책을 수립하는 기관이나 담당자는 그것을 집행하는 기관이나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정책이 현장에서도 의도한대로 집행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때문에 현장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부분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 현실에서는 이 부분이 매우 허술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법령을 개정하다보면 규제 대상자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적절한 유예기간을 설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로는 몇 달에서부터 길게는 몇 년에 이르기까지 유예기간은 사안에 따라 준비에 필요한 기간만큼 다양하다. 그런데 시간이 많다고 사전에 충분히 준비해서 법 적용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간 낭패를 볼 가능성이 많다. 수시로 현장에서 법 적용에 문제가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독려해야 할지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음식폐기물 해양투기 금지에 따른 대처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몇 년 전에 있었던 관련법률 개정에 따라 2013년부터는 음식폐기물을 바다에 버릴 수 없도록 규정했지만, 그 몇 년이라는 유예기간 동안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육상에서 음폐수(음식폐기물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처리하는 시설을 확보하지 않고 예산타령만 하고 있다가 법률 시행시기가 임박하면서 음폐수 처리에 대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처리시설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기간을 고려하여 미리 예산을 확보하는 등 필요한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정책당국이 수시로 점검하였더라면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사태였다. 산업폐수처리장에서 발생하는 슬러지의 해양투기를 2014년부터 금지하는 것으로 예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또 다시 시행시기를 유예해달라는 민원이 발생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예산 확보와 집행만으로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많은 경우 예산을 집행하는 당국은 지방자치단체인데, 공무원의 잦은 교체 등으로 업무에 대한 전문성 - 특히 기술적인 업무의 경우 더욱 그렇지만 - 부족으로 정책이 의도한 사업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부실한 사업집행을 보완하기 위해 또 다시 예산을 확보하여 덧칠하는 식으로 예산 낭비가 거듭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중앙정부의 책무는 예산을 확보해서 지자체에 나누어주었다고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 지자체가 예산을 제대로 집행했는지,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기술과 방법을 적용해서 그 사업이 추진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 계획한 대로의 성과가 나오고 있는지를 수시로 점검하고 지도하는 역할까지 제대로 해야 된다.

 

정책이나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그것이 집행되는 과정과 결과까지 끊임없이 확인하여야 한다. 그것은 실무자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장·차관을 비롯한 모든 고위직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핵심 행정행위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정책 수립과 발표에만 신경 쓰지 말고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꼼꼼히 챙겨야 국민들이 비로소 정책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손톱 밑 가시란 탁상에 앉아서는 확인할 수 없는, 바로 현장에서 나타나는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