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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호 전환경부차관의 자전적 –공직심서-연재 8-타이밍

길샘 2017. 2. 19. 02:48

문정호 전환경부차관의 자전적 공직심서-연재 8

 

 

2.9. Timing이 중요하다

 

Timing이란 말의 뜻을 사전적으로 풀어보면 동작의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순간, 또는 그 순간을 위하여 속도를 맞춘다는 말이다. 또한 주변의 상황을 보아 좋은 시기를 결정한다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우리말로는 적기(適期)라는 표현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Timing이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때를 맞추는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훈련과 경험을 통해서만이 찾아질 수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정책 수립과 추진 시에도 당연히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와 내용을 가진 정책이라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 정책은 빛을 보지 못하고 유보되거나 사장(死藏)될 수 있다. 좋은 정책을 제대로 평가하고 수용해주는 상관을 만나지 못하거나 강력하게 뒷받침해줄 조직이 없어도 정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중요한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사소한 내용이나 문구에 집착하여 제때에 대처하지 못할 경우 커다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정책이 되었든 상황보고가 되었든 적시(適時)에 추진되거나 보고되지 못하면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언제가 적시인지, 그 타이밍을 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시간을 다투는 상황보고 같은 경우에는 급박하고 중요한 것부터 우선 보고하고, 자세한 사항은 시간 여유를 가지고 추가로 파악해서 보고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다. 상황전파가 시급한 상황에서 자세한 내용을 다 파악한 후 보고했다가는 버스가 지나간 다음에 손드는 격으로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 듯 들릴 수 있지만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만큼 주의해야 한다.

 

·차관이나 상관이 지시한 사항에 대해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사안인 경우 1, 2차에 걸쳐 추진상황을 중간보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검토하고 정리해서 보고하려다 보면 실기(失機)할 수도 있고, 시간 경과에 따라 상황이 변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상관이 지시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초래된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요한 정책을 추진해야 할 적기를 찾는 일인데, 통상적으로는 담당공무원이 업무를 추진하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하겠지만, 때로는 개인 차원이 아닌 조직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정책 추진 여건에 대한 상황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정책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분위기를 언론이나 전문가 토론회 등을 통해 조성해나가는 노력을 선행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하겠다.

 

그런데,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것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중요한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적기가 언제냐 하는 것을 판단하는 일이다. 이러한 중요한 국가정책 또는 사업의 추진 여부는 단순히 사회적으로 정책을 받아들일 여건이 조성되어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 외에 통치권 차원의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종적 판단은 통치권 차원에서 이루어지더라도 처음 정책 또는 사업계획을 입안하고 보고하는 일은 공직자 개인 또는 부처의 판단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이명박 정부 초기에 대운하 건설이라는 대통령공약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때 환경부는 이미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충분한 수량(水量)을 확보하는 동시에 하천의 수질개선과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자 대안을 마련하고 청와대 비서진과 사전협의 과정까지 마친 후 최종단계로 대통령께 보고할 타이밍을 모색 중에 있었다. 대운하사업 포기로 대통령의 심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보고했다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국토해양부장관이 대통령께 ‘4대강 살리기 사업추진계획을 보고 드리고 재가를 받아 언론에 발표하였다. 환경부로서는 훨씬 오래 전부터 다양한 검토와 준비를 마치고 있었으면서도 타이밍을 놓침으로써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환경부가 국토해양부보다 앞서 제때에 보고를 했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논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역사에 가정은 별무소용이니 뒤늦은 후회만 남고 말았는데, 그만큼 정책결정이나 보고에서 타이밍이란 중요한 것이다.

 

많은 경우 행정부 내부에서 중요한 정책이나 사업이 결정되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검토과정이 설정되어 있으므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부처 간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에 의해 걸러지거나 재정당국 등에 의해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선거판에 표만을 의식하여 무리하게 공표되고 추진되는 공약사업이나 정책은 그러한 거름장치 또는 제동장치가 미약하거나 제대로 작동 안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적어도 공직자들은 부처의 이익을 위해 설익은 정책이나 사업을 선거철에 공약사업으로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삼가는 것이 좋다.

 

또한 정권 초기 새 정부의 정책철학이나 국정운영방향에 편승하여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기 위해, 자기 부처의 이익을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정책을 은밀히 대통령에게만 보고하고 정부 내외의 협의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발표하는 것은 공직자로서 삼가야 할 일이다. 그러한 정책은 정부의 불협화음을 노출시키고, 세월이 흐르면 다시 도마 위에 올라 비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