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신라시대 물길을 찾아-안압지와 포석정
아름다운 곡선미 신라의 물길 안압지와 포석정
유연한 곡선과 절묘한 굴곡의 미적 흐름
포석정엔 최후의 술잔이 낙엽처럼 흐르고
우리 옛 조상들은 물과의 대화,물과의 공감은 어떻게 표출했을까.
신라 경주 원지(사적 419호)는 월지(안압지)를 비롯하여 구황동원지, 용강동 원지등이 있는데 통일신라의 대표적 연못이다.
840평의 연못터와 호안석축렬,인위적으로 주성한 섬 2곳과 건축물,다리시설과 도로배수시설로 형성되어있다. 절묘한 굴곡으로 이루어져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곡지형 원지로 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시기의 원지는 대부분 방형에 가까운 방지계 원지이나 신라 원지 중 월지는(안압지) 연못을 팔 때 나온 개흙을 동안(東岸)과 북안(北岸)에 쌓아 12개의 가산을 조성한 것이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가산을 조성한 동안과 북안을 곡선으로 처리하였다. 동안은 북안에 비해 굴곡이 심하게 나타나는데 두 개의 반도가 연못 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경주 월지와 같이 곡지형 구조를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원지는 중국 당 대명궁 태액지인데, 축조년대는 약662년 정도로, 월지보다 약 10년 정도 앞선 시기에 축조되었다. 연못의 크기는 월지의 약3배에 달하지만, 곡선의 정도는 비교적 완만한 형태로 경주 월지가 교태스러움이 더 강하다.
월지는 못 내에 섬, 가산의 조성과 주변 건물지의 배치와 형태 등을 보았을 때 앞선 시기인 대명궁 태액지를 모방하여 연못을 조성한 것으로 보이며, 규모가 태액지에 비해 작았던 점을 고려하여 동안과 북안의 굴곡을 비교적 심하게 처리하여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올 수 없게 조성하였으며, 호안 전체에 가공된 장방형 소석 및 장대석을 사용하여 축조한 점이 타 원지에서는 보기 힘든 신라 원지만의 독창적인 축조 기법이다.
경주 포석정지(鮑石亭/사적 1호)는 신라왕실의 별궁으로 야외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전복모양의 석조구조물인 포석정지는 화강석으로 만든 수로로 길이가 약 22미터이다.
이곳에서 신라 49대 헌강왕이 여흥을 즐기면 경주 남산의 신이 왕앞에서 춤을 춘다하여 어무산신무(御舞山神舞)라는 신라춤이 탄생된다.
55대 경애왕 4년(927년) 후백제 견원의 습격에 의해 신라 최후를 맞았으며 결국 56대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1천년 역사의 신라는 막을 내린다.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으나 이처럼 수려하고 굴곡이 현란한 것은 드문데 마치 굽이굽이 신라왕손들의 흐름과도 같아 더욱 애잔하다.
과거 시절에는 연못이 조경과 더불어 식수와 하천관리,소방등 다목적용으로 많이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향후 이같은 역사적 문제를 세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으나 고고학적 연구가 많은 자본과 오랜 기간 연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후손들은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환경경영신문/경주 리포트 사진 남선광,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석사연구생 남동운)
*신라시대 왕위연표(1대-56대)
1.혁서세거서간(BC57-AD4) 2. 남해차차웅(4-24)-혁거세의 적자
3.유리이사금(24-57)-남해차차웅의 태자....9.별휴이사금(184-196,탈해왕의 아들 구축각간의 아들),17.내물이사금(356-402,구도갈문왕의 손자),23.법흥왕(514-540,지중마립간의 원자),24.진흥왕(540-575,법흥왕의 동생 ),26,진평왕(579-632,진흥왕의 태자 동륜의 아들),27.선덕왕(632-647,진평왕의 맏딸),28.진덕왕(647-657,진평왕어머니 동생의 딸)29.태종무열왕(657-661,진지왕의 아들 이찬용춘의 아들),30.문무왕(661-681,태종무열왕의 원자),31.신문왕(681-692,문무왕의맏아들),49.헌강왕(875-886,경문왕의 태자),54.경명왕(917-924,신덕왕의 태자),55.경애왕(924-927,경명왕의 동생),56.경순왕(927-956,문성왕의 후손 이찬 효종의 아들)
-56명 왕들의 평균 재위기간은 18년4개월이며,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왕은 5대 파사이사금으로 55년(57-112,유리이사금의 둘째아들)을 재임했으며 26대
진평왕이 53년,47년을 재임한 1대 혁거세거서간, 46년을 재임한 16대 홀해이사금(310-356,내해이사금의 손자),17대 내물이사금(356-402,구도갈문왕의 손자)등으로 40년 이상 재위한 왕이 모두 6명이나 된다.
1년 미만으로 단명한 왕은 39대 소성왕(799-800,원성왕의 태자 인겸의 아들),44대 민애왕(838-839,원성왕의 증손),50대 정강왕(886-887,경문왕의 둘째아들)이며 2년 재임은 43대 희강왕(836-838,원성왕의 손자 이찬헌정의 아들),55대 경애왕이 3년,25대 진지왕(575-579,진흥왕의 둘째아들),29대 태종무열왕,47대 헌안왕(857-861)등이 4년, 5년 재위한 왕은 34대 효성왕,37대선덕왕,53대 신덕왕등 5년 미만 짧게 재임한 왕은 모두 11명이다.
신라시대 왕들의 재임기간의 또다른 특징은 전반기 1대부터 18대까지는 평균 26년8개월을 재임했지만 신라 중반기인 19대에서 36대까지는 평균 20년 8개월, 37대부터 56대까지는 8년 8개월로 신라시대 후반기로 갈수록 재임기간이 짧다는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자료정리-환경국제전략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