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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량제 봉투 정책 제안은 기업이 - 광화문포럼 특강-이국노(한국예도문화원이사장)

길샘 2016. 12. 23. 19:23

종량제 봉투 정책 제안은 기업이

그 공로는 환경부 고위직에게 훈장

고 노무현, 대통령이 되기까지






                                              광화문포럼 특강-이국노(한국예도문화원이사장)


고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나. 그 비밀이 광화문포럼 특별강연에서 밝혀졌다.

특강에서 이국노이사장(한국예도문화원)은 종로시절 고 노무현대통령과는 수시로 대면했다.

그때마다 많은 지인들을 소개해달라고 하여 한차례에 십여명씩 소개했다. 당시 이광재 전강원도지사나 안희정충남지사등은 그저 가방잡이에 불과했다.

종로구에 터를 제대로 잡지 못한 현실에서 이종찬전안기부장이 종로구 자리를 내 놓아라 강요했다.

고민하던 노대통령은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부산은 당시 허삼수씨가 맹주로 국회의원선거에서 그를 이기기에는 어려웠다.

십자가를 지고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한것에 대해 김대중대통령은 매우 기뻐했다.

이때 이국노회장은 노무현대통령에게 조언을 했다. 부산결행을 결심할 때 김대중대통령에게 한가지 약속을 받아내라고 했다. 그것은 다음 대통령 선거시 대통령 후보에 나선 노무현에게 반대만 하지 말아달라는 약속이다.

후에 대통령 후보선정에서 한화갑,권노갑씨등이 극한 반대를 했다.

그러나 이미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 노무현대통령과의 약속을 한바 있었고 결국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낙연도지사와는 친척관계로 손자벌이다. 열린우리당으로 분파되는 과정에서 이낙연의원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한밤에 전화를 하여 고민을 털어 놓았다.

이때 어머니는 -사내새끼가 지조가 있어야지-라며 전화를 끊었고 이낙연도지사는 결국 민주당에 유일하게 남은 인물이 되었고 지금까지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날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 고민중에 자문을 구했더니 청계천1가에서 8가까지 3일만 걸어보라는 조언을 해줘 농구화가 찢어지게 걸었다.

결국 결핵성늑막염에 걸리기도 했지만 돈은 발로 뛰어야 벌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장사라는 것은 물건을 파는게 아니다. 나를 팔아야 하고 물건을 판다는 것은 상대에게 이익을 줘야만 물건을 산다. 그리고 부자를 상대로 장사해야 한다,

플라스틱사업을 하면서 전두환시절이 왔다. 당시 평화의 댐을 건설하기로 했는데 당시 주변에 위치한 군인들에게 식수를 공급해야 하므로 영하 40도에서도 얼지 않는 파이프를 생산할 수 있냐는 주문을 받아냈다.

당시에 이같은 생산시설은 없었지만 물론 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돌아왔다.

자금도 부족하여 어렵게 외국에서 생산시설을 들여와 발포형파이프를 생산하여 납품하게 이르렀다.

결국25천만원이란 거금을 007가방에 담아 돌아와 홍제동에 작은 건물을 구입했다.

내게서 뻥(거짓말)은 미래의 비젼으로 생각한다.

플라스틱협동조합이사장을 45살에 맡아 거대한 조합을 운영하던 시절이다.

당시 플라스틱공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대부분 일회용봉투를 제작하는 기업들로 3백여곳을 차지했다.

마땅한 일거리가 없이 원료수입 배분 권한을 지닌 조합은 일본등을 시찰하면서 미래의 일거리를 찾았다.

그리고 돌아와 일회용비닐봉투를 제작하여 전국에 배포하는 쓰레기종량제 사업을 모색하고 환경부에 건의했다.

1회용 쓰레기봉투는 전국 3백개 기업에서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서울시 이원종시장을 찾아가 플라스틱조합과 수의계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원종시장은 당시 내무과장인 이상진과장을 불러 강하게 지시했고 결국 서울시로부터 한국플라스틱조합과 구매일체에 대해 상의하여 구매한다는 공문을 받아냈고 이를 가지고 전국 지자체를 돌아 다녔다.

이렇게 해서 환경부의 쓰레기 종량제봉투 사업은 실행됐고 성공했으나 결국 그 공은 환경부 고위국장에게 돌아갔다.(종량제 실시는 국내 쓰레기배출량을 대폭적으로 저감했으며 수도권매립지 매립량이 대폭 줄어 2016년 만료 매립장이 아직도 생존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분명히 고백하는 것은 내 자신은 종량제봉투 사업을 통해 단 한푼의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광화문 포럼 특별강연- 환경경영신문/신찬기전문기자)